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秉根

秉根

1855. 10. 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秉根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남 정평(定平)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정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정평군 고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55년 10월 4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고산면(高山面) 신경리(新京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7일 정평군 고산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다. 3월 17일 신경리 마을 주민 9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구창리(舊倉里)로 행진하였다. 신경리 주민들이 구창리에 도착하자, 유제섭(劉悌燮)을 비롯한 구창리 마을 주민들이 시위대에 합세하였다. 이와 동시에 유제섭은 구창리와 남양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였다. 오후 6시 무렵 구창리·신경리·남양리의 천도교도·기독교인을 비롯한 주민 300여 명과 함께 풍송리(豊松里)에 위치한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에게 해산을 강요하였다. 유제섭 등 주도자들이 다음날인 3월 18일에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약속하자,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후 고산면 풍송리 헌병주재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9일 1심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본인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근거하여 의사발동한 것이므로 범죄가 아니기에 1, 2심의 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그 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