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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墩浩

墩浩

1868. 12. 5 ~ 194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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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墩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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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英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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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8년 12월 5일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원리동(院里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호는 운서(雲西)이며, 이명은 이돈호(李暾浩)이다.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한말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의 서명에 참여하였다.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도 불리는 ‘파리장서운동’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한 영남유림이 주축이 되어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여기에 137명이 함께 서명한 것이다. 이 파리장서운동에 서명자로 동참하였다. 일제의 한국 주권 침탈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해 기술한 「파리장서」는 문안 작성에도 참여한 김창숙이 직접 파리로 가서 전달하기로 하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김창숙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파리에 갈 수 없게 되자, 당시 파리에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전달해 강화회의 의장에게 제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파리장서」를 한문본과 영문본으로 인쇄하여 각국 대표와 공사관으로 발송하였고, 국내 향교에도 한문본을 우송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2일 서명자에 참여했던 송회근(宋晦根)이 경북 성주(星州)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받는 과정에서 파리장서운동이 발각되었다. 그러자 일제는 이 운동을 주도한 곽종석·장석영(張錫英)·김창숙 등과 함께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들과 관계자들까지 체포하였다. 이때 서명자로 붙잡혀 고초를 겪고 풀려났다. 이후 1919년 9월 7일 유연복(柳淵福)의 권유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서간도의 독립군정부의 군자금 조달을 위해 청송(靑松)과 영양의 재무총감을 맡아 자금 모집을 담당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다시 붙잡혔다. 이 일로 같은 해 11월 5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를 받았다. 곧바로 검사 측에서 항소하였지만, 12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무죄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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