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基鳳

基鳳

1896. 12. 14 ~ 1919. 4. 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基鳳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창원군 진동면
  • · 진북면
  • · 진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6년 12월 14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삼진(진동, 진북, 진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창원군 만세운동은 8차례 만세시위와 3차례의 계획이 확인된다. 이 중 가장 격렬하였고, 일제 군경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삼진의거’라고도 불리는 삼진 만세시위이다. 삼진은 진전면·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 세 지역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한편 창원군 만세시위는 3월 중순에 시작되어 4월말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특징이 있는데, 삼진 만세시위 역시 그 연속선상에 있었다. 4월 3일 일어난 삼진 만세시위는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만세시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 등은 먼저 진동면 고현리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람들로서 삼진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고현리 만세시위가 일제 군경의 폭력적 진압에 해산당하고 주도층이 대거 연행되었을 때 다행히 검거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만세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삼진 지역의 민족주의 인사들인 황태익(黃泰益)·변상헌(卞相憲)·구수서(具守書)·변우범(卞又範) 등도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였다. 준비 작업을 위한 회합은 여러 번 장소를 바꿔가며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거사일을 4월 3일로 정하고, 삼진 지역의 주민을 긴밀한 연락을 통해 최대한 동원해 만세시위를 진전면 양촌리(良村里) 냇가에서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시위에 참가하는 군중에게 나눠 줄 작은 태극기 수십 개와 시위대의 선두에 세울 큰 태극기 6기도 제작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지역별 연락과 태극기 등 시위 도구 제작에 힘을 보탰다. 4월 3일 아침 일찍 만세시위 시작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 냇가로 갔다. 오전 9시에 이미 사전 연락 등을 통해 각 마을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만세시위 필요성을 열정적으로 피력하는 연설과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선창이 이어졌다. 이에 호응해 주도자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모인 군중이 따라서 만세를 부르면서 순식간에 시위의 열기가 높아졌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소리쳐 부르면서 인근 마을을 돌았다. 그리고 큰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시위대를 지휘하여 진동면으로 향하였다. 3월 28일 만세시위에서 폭력적 진압과 다수 군중을 연행해 간 진동헌병주재소를 향한 것이었다. 진동면 주민들도 백승학(白承鶴) 등의 주도로 소풍을 가장하고 진동 성터 뒤를 돌아 합류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를 부르며 진동면으로 가는 연도에서 인근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진동면에 들어섰을 때에는 백승학이 이끄는 진동면 시위대를 포함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한 군중은 최소 2,000명 이상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오후 2시, 시위 행렬의 선두가 진동면 사동리(社洞里) 사동천교(社洞川橋)에 도착했을 때, 급보를 받은 진동면 현병주재소 헌병들과 헌병보조원, 그리고 일본인 재향군인 등 30여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오후 3시에는 마산포병대에서 급파된 일본군 지원병들도 가세하였다. 총검을 휴대한 일본군을 향해 시위대가 만세를 부르며 앞으로 나갔고, 물리적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양측 사이에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진행되다가 진압 군인들 중에 부상자가 나왔고, 시위대의 기세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군들은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그 결과 현장에서 순식간에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일본군과의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다가 일본군이 발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