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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今哲

今哲

1879. 11. 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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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今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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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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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79년 11월 2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 지문리(芝文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금보(今甫)를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의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진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이후 전국에서 이와 뜻을 같이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안성에서도 같은 해 3월 11일 안성면 시장 상인들과 학생들의 거사를 시작으로 안성군 전역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 주민들 역시 마을 단위로 모여 뒷산 등지에서 만세를 외치고 자진 해산하였다. 만세시위에 참가한 원곡면 주민들은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을 중심으로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공격하고, 안성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자고 하였다. 이들은 원곡면 일대를 순회하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하였고, 지문리 주민 염만흥(廉萬興)·최만보(崔萬甫)는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만나 계획을 듣고 지문리에 그 소식을 알렸다. 일본인들의 농토 침탈과 고리대, 조선총독부의 잦은 부역 동원으로 인해 식민통치의 불합리성을 겪고, 독립을 염원하고 있던 당시 염만흥과 최만보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 지문리 주민 박동돌(朴同乭)·최득인(崔得仁) 등과 함께 최만보의 안내에 따라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의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이후 1,000여 명에 달한 군중들과 함께 이덕순과 이근수(李根洙)의 인솔 하에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동항리(東恒里)의 주재소를 향해 행진한 뒤, 오후 10시 주재소를 포위하였다. 주재소의 일제 경찰들이 위세에 눌려 도망치자,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의 외벽과 창문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 이후 최은식 등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내부의 책상과 의자를 꺼내 파괴하고, 부서진 집기들에 불을 붙여 소각하였다. 최은식 등이 주재소 건물을 불태우자,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건물에 돌을 던져 외벽을 훼손하고, 최탁봉(崔卓鳳)과 함께 통신용 전신주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린 다음, 전선을 절단하였다. 이후 일본인 상점가로 향하는 대열에 합세하여 만세를 외치고, 이튿날 4월 2일 오전 4시에 원곡면사무소가 소각될 때까지 동행하다가 이후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는 병력을 동원하여 안성 주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였다. 일제는 운동 직후부터 같은 해 6월까지 두달 간 만세시위 참가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야간에 마을을 습격하여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가옥에 불을 질렀다. 또한 군수와 면장 등을 내세워 용서할 것처럼 회유한 다음 참가자들을 연행하였다. 만세시위 직후 붙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는데, 체포와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일제는 원곡면과 양성면의 만세운동이 식민통치에 조직적·전면적으로 항거하였다는 이유로 내란죄 성립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고등법원에 배당하였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경성지방법원이 관할 재판소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1920년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의 결정을 통해 경성복심법원으로 재판권이 변경되었다. 이후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군중들을 이끌고 주재소와 우체국 전신주 등의 파괴·방화 과정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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