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國相
國相1884. 5. 18 ~ 1937. 10.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5월 18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의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의 주민들 역시 3월 28일부터 마을 단위로 모여 면사무소나 마을 뒷산에서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은 3월 31일 만세운동을 해산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튿날에 다시 모여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일본의 통치기관을 공격하고, 안성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자고 하였다. 칠곡리에 거주하던 이유석과 홍창섭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하였다. 이때 두 사람에게 계획을 듣고 취지에 공감하여 참가를 결정하였다. 4월 1일 정오 무렵 공회당(公會堂)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전하며 참가를 권유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 돌과 몽둥이, 낫, 짚단, 성냥 등을 지참한 원곡면민들과 함께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위치한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1,000여 명의 군중은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동항리(東恒里)의 주재소로 행진한 뒤, 오후 10시 주재소를 포위하였다. 시위대의 위세에 눌린 일제 경찰들이 도주하자 군중은 주재소 창문에 돌을 던지고 내부로 들어가 주재소의 책상과 의자 등을 파괴하고, 서류를 소각하였다. 이때 소지하고 있던 돌을 던져 주재소의 외벽과 창문을 파괴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건물의 외벽을 파괴하고, 안에 있던 서류들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을 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아 불태웠다. 이튿날인 4월 2일 오전 4시까지 만세를 외치고, 원곡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건물을 소각한 이후 해산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과 일제 군인들이 두 달 동안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검속하였다. 그러면서 야간에 마을을 습격해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가옥에 불을 지르는 등의 만행을 자행하면서 참가자들을 색출해 연행하였다. 이때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원곡면과 양성면의 만세운동이 식민통치에 조직적·전면적으로 항거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내란죄 성립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만세운동을 고등법원에 배당하였다. 1920년 3월 22일 양성·원곡면의 만세운동이 내란이 아니라는 고등법원의 판단에 따라 경성지방법원이 관할재판소로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정을 통해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이후 칠곡리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을 외칠 것을 적극 권유하고,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우체국 등을 파괴·방화했다는 이유를 들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