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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욱

尹容旭

1891. 5. 4 ~ 196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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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용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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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1년 5월 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는 서당의 훈장으로 지내던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독립만세 운동의 상황을 파악한 민영갑은 같은 동리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4월 1일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여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일찌감치 연극공연장으로 가서 관객으로 착석하고 있던 민영갑 등은 아직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부터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20~3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동참하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귀가하였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인물 5명이 체포되었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를 거쳐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홍성경찰서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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