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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永老

尹永

1868. 2. 17 ~ 195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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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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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68년 2월 17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지곡리(池谷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청양군 정산면(定山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5일 청양군 정산면 만세시위에서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친인척들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권흥규의 시신을 인수하여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운구하였다. 이미 전날 만세시위와 권흥규 사망 소식을 접하고 운구가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때를 기다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운구행렬에 참여하였다. 운구가 지나는 길목의 마을마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운구 행렬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구행렬 속에서는 태극기가 배포되었고, 통곡 소리는 ‘독립만세’의 절규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적극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안심리를 향해 행진하였다. 일제는 운구 행렬이 만세시위로 이어지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운구 행렬을 항해 발포하였다. 이 일로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운구 행렬을 흩어졌다. 이후 운구행렬에 참여하여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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