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亮植
尹植1866. 7. 28 ~ 1944. 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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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66년 7월 28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성산면(星山面) 용소리(龍沼里)의 파평(坡平) 윤씨(尹氏) 양반 가문에서 아버지 윤태규(尹泰奎)와 어머니 창원(昌原) 황씨(黃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옥여(玉汝), 호는 태봉(泰奉)이다. 향리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유림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 세칭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유림의 1차 대표 137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의 만세시위가 일어나 33인 민족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에 유교계의 인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유림은 나라의 독립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의 의사를 파리강화회의에 직접 전달하기로 결의하고, 유림의 총의를 모아 국제사회에 알릴 문안을 작성하였다. 이 문서가 총 2,674자의 한자(漢字)로 이루어진 장문의 「독립청원서」였고, 세칭 「파리장서」이다. 당시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의 주도 세력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이었다. 곽종석은 영남지역에서 스승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맥을 중심으로 독립청원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문하의 제자들을 영남 지역 곳곳으로 파견하여 독립청원운동에 유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곽종석의 제자이자,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는 유림의 대표로 선정된 김창숙(金昌淑)이 찾아와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를 보여 주자, 유림의 1차 대표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파리강화회의의 유림 대표로 선정된 김창숙(金昌淑)은 파리로 가서 「독립청원서」를 직접 제출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여건상 중국의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후 파리로 가지 못했다. 이에 김창숙은 유림의 「독립청원서」를 이미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고, 국내의 각 향교에도 사본을 우송하였다. 이후 유림의 독립청원사건은 경북의 상주(尙州)에서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송회근은 4월 2일 성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4월 12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이 발각되었다. 이에 유림 대표들에 대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체포가 전개되어 곽종석을 비롯한 윤주하 등 다른 서명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9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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