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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태

尹順泰

1873. 5. 15 ~ 1949.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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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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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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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73년 5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성태(尹聖泰)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청양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5일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 만세시위에서 목면 안심리(安心里)에 거주하는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군경의 발포로 사망하였다. 4월 6일 아침 일찍부터 권흥규의 친인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시신 인수를 위해 헌병주재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운구행렬을 조직하여 선두에 권영진(權寧鎭)이 쓴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과 다수의 만장(挽章)들을 세우고, 고인의 자택이 소재한 목면 안심리로 향하였다. 전날 만세시위에서 권흥규의 사망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운구가 화양리를 지나갈 때를 기다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운구에 동참하였다. 운구가 지나는 곳마다 주민들이 속속 따라나서기 시작하여 운구행렬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가 증가하였다.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이 배포되었고, 통곡소리는 점차 ‘조선독립만세’의 외침으로 바뀌었다. 이에 적극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안심리를 향해 행진하였다. 일본 헌병이 발포하며 운구행렬을 진압하자 총격을 피하여 해산하였다. 4월 6일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로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1일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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