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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尹聖鉉

1902. 12. 13 ~ 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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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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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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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삼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02년 12월 13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회면(佳會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윤성(尹聖)·윤소군(尹小君)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합천군 삼가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의 만세운동은 고종 장례식을 계기로 유림 등, 지역 인사들이 상경하여 서울의 만세시위를 접하고 돌아온 것이 시작이었다. 가회면의 경우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윤구현(尹圭鉉)·김상준(金相峻)이 뜻을 같이하는 지사들과 거사를 협의하여 일으켰다. 합천군에서는 3월 18일 삼가면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매일같이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3월 23일 삼가면 삼가시장의 만세시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3월 23일 삼가시장 만세시위에는 13,000명의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였다. 3월 18일 삼가면 만세시위의 참여자가 300~400명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원규(鄭元圭)·진택현(陳宅賢)·공재규(孔在奎)·정치규(鄭致圭) 등 주도자들과 함께 조직적인 군중 동원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장날인 3월 23일 삼가시장에는 합천군 전역은 물론 인근 의령군(宜寧郡) 사람들까지 몰려들었다. 시위대는 독립의 당위성을 고취하는 연설을 듣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연단에서 연설하던 임종봉(林鍾鳳)에게 일본 헌병이 발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종봉이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들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였다. 시위대는 발포한 일제 군경을 쫓아 삼가면 주재소·우편소 등으로 몰려가 항의하였다. 결국 일제 군경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시위대 13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이끌던 중, 일제 군경의 총격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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