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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尹錫禧

1891. 12. 16 ~ 193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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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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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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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1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백곡리(白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정산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정산면의 만세운동은 백곡리의 뜻있는 유림들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다. 홍범섭(洪梵燮)은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던 시기 서울에 체류하고 있었다. 홍범섭은 종로(鐘路)의 여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읽어보고, 자신의 고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귀향한 홍범섭으로부터 초대받아 4월 5일 아침 일찍 평소 친분이 있는 임의재(任毅宰)·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등과 함께 그의 자택을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서 홍범섭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고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마침 당일이 지역의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 장날이었으므로, 오후부터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 날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석 등과 함께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장날 만세시위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일본 헌병대가 정산시장 북쪽 길목에 대기하고 있었다. 만세시위가 벌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일본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동지들과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정산시장으로 재진입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재차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한국은 이미 독립했으니 만세를 부르라”고 독려하며 시장에 나온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100여 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고, 이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확대되어 격화되자 일본 헌병은 시위대에 즉시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연행하였다. 이때 주도 인물의 한 사람으로 파악되어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그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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