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규
尹錫奎1886. 6. 11 ~ 1973. 2.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영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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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6년 6월 1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상직동(上直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구세군 계열의 기독교인이었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덕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지역 만세시위는 3월 12일 김세영(金世榮)이 서울에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북장로교 교회의 조사(助事)인 김세영은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가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접하고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김세영은 평소에 친분이 있던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과 세계정세와 한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운동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권태원은 영해(寧海) 방면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 교회의 정규하(丁奎河), 영덕면에 북장로교 조사(助事) 강우근(姜佑根)에게 협조를 구하였다. 강우근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3월 18일 장날에 남석동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신도들과 접촉하였다. 3월 16일 강우근은 영덕면에 있는 교회에서 북장로교 신도 김암우(金岩佑)를 만났으며, 17일에는 금호동교회에 집사(執事) 이정규(李正奎), 북장로교회의 영수(領袖) 강대열(姜大烈), 권찰(勸察) 김용하(金龍河)를 개별적으로 만나서 독립을 위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운동의 뜻을 전하고, 18일 시위 계획을 전하면서 동의한다면 각자 동참할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또한 강우근과 더불어서 북장로교 신도 이승구(李承玖)도 18일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영덕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영수 김혁동(金赫東), 신도 이명언(李明彦), 영수 김태을(金太乙) 등에게 18일의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3월 18일 장터에 있다가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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