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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尹相殷

1895. 5. 10 ~ 198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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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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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범어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5년 5월 10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북면(北面) 남산리(南山里,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거주지는 동래군 북면 청룡리(靑龍里)이다. 일찍이 출가하여 범어사(梵魚寺)의 승려가 되었다. 법명(法名)은 기봉이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평소상은(平沼相殷)을 썼다. 1915년 승적을 얻고 1916년부터 범어사 소속 지방학림(地方學林)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8·19일 범어사 소속 지방학림과 명정학교(明正學敎)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운동에 참가하기 전 한용운(韓龍雲)은 범어사를 비롯한 지방 사찰을 순회하며 독립정신의 함양을 강조하였다. 독립선언 궐기 직전 각각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출신으로 서울의 중앙학림에서 수학 중이던 김법린(金法麟)과 김상헌(金祥憲)을 불교계의 학생대표로 선출하였다. 이 두 사람은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하여 만세를 외친 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낙향하여 범어사에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때 김한기(金漢琦)·허영호(許永鎬) 등과 뜻을 같이하여 3월 14일 김법린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3월 17일 범어사에서 열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졸업 송별회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다. 3월 18일 이근우(李根雨)·김해관(金海管)·김재호(金在浩) 등이 주도한 1차 만세운동 당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동래면 서문 부근에서 만세를 외치며 남문까지 행진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아침 허영호 등과 함께 동래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뒤, 오후 5시 명정학교·지방학림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이 시장 일대를 검속하자, 학생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하여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승려로 활동하였으며, 야학을 개설하여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1935년 범어사가 있는 북면 청룡리에서 명정야학교를 개설하고 교장으로 부임하여 유소년 교육과 계몽 활동에 종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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