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尹相元1895. 9. 21 ~ 1973. 9.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전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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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895년 9월 21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全義面) 신정리(新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3일 전의면 전의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던 전의장터 만세시위는 신정리의 유림 이수욱(李秀郁)이 주도하였다. 이수욱은 고종 장례식 참석을 위해 서울에 머물던 중, 3월 1일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여 지역의 만세운동 계획을 결심하였다. 3월 6일 귀향하자마자 우선 추경춘(秋敬春)과 만나 전의면의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하여 의견 일치를 보고 만세시위 실행을 위한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3월 7일 밤 이수욱과 추경춘의 초대를 받고 신정리 박성교(朴聖敎)의 집에서 이들과 회합하였다. 이때 이수욱으로부터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뒤이어 전의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이수욱의 제안에 함께 참석한 추득천(秋得千)·윤자벽(尹滋壁)·윤자훈(尹滋勳)·윤상억(尹相檍, 尹相億)·김재주(金在周) 등과 즉석에서 동의를 표시하고, 전의장터 장날인 3월 13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3월 8일 김병옥(金炳玉)의 집에서 열린 회합에서는 정원필(鄭元弼)·이장희(李章熙)·이광희(李光熙) 등이 동지로 결합하였고, 이들과 함께 구체적인 만세운동의 준비로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배포할 태극기 약 150본을 제작하였다. 3월 13일 오전 9시 경 이수욱 등과 함께 신정리에서 읍내 시장으로 넘어가는 갈정리(葛井里) 고개로 가서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이후 전개될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마친 후, 12시 40분 쯤 이수욱 등과 함께 전의시장으로 나갔다. 시장에 모여 있는 약 150명의 주민들을 향하여 이수욱은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동지들과 함께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자, 옷 속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흔들면서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수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시장에 나온 주민들과 함께 읍내 각처를 행진하였다. 이와 같은 전의장터 만세시위에 일제는 조치원헌병대 전의분견소 헌병 병력 외에 조치원철도원호대 대원 20명을 급파하여 만세시위를 폭압적으로 해산시키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주요 인물 23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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