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억
尹相億1899. 5. 22 ~ 1992. 9.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전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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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9년 5월 22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全義面) 신정리(新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상돈(尹相敦)·윤순여(尹順汝)이며, 한자를 달리한 윤상억(尹相敦)을 쓰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연기군 전의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 전의장터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수욱(李秀郁)이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며 시작되었다. 이수욱이 추경춘(秋敬春)과 함께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다른 동지들을 규합하자, 3월 7일 밤 박성교(朴聖敎)의 집에서 열린 회합에 추득천(秋得千)·윤자벽(尹滋壁)·윤상원(尹相元)·김재주(金在周)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회합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과 전의면에서의 만세시위 추진 계획을 듣고, 즉시 호응하여 동지로 참여하였다. 이때부터 곧바로 구체적인 만세운동 계획을 협의하여 전의장터의 장날인 3월 13일을 만세시위의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3월 8일 밤 정원필(鄭元弼)·이장희(李章熙)·이광희(李光熙)가 동지로 결합하였고, 이후 거사일까지 이들과 함께 만세운동에서 사용할 태극기 약 150본을 제작하였다. 3월 13일 오전 9시 경 만세시위를 위해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이수욱 등과 함께 읍내 장터로 가는 길목인 갈정리(葛井里) 고개로 가서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의 계획을 홍보하였다. 그날 12시 40분 경 이수욱 등 동지들과 함께 전의시장으로 나갔다. 시장에서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수욱의 연설이 끝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것을 신호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일제히 품속에 숨겨 가지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시위에 동참해 오자, 이들의 선두에서 이수욱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의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에 일제는 조치원헌병대 전의분견소 헌병들과 조치원철도원호대 대원들을 급파하여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해산시키고 주요 인물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붙잡혀 헌병대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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