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만
尹相萬1890. 9. 27 ~ 1943.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4월 8일 철원군 내문면 독검리 만세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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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0년 9월 27일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내문면(乃文面) 오동리(梧洞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이었으며, 1919년 4월 8일 내문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서 주민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내문면 만세시위는 내문면 독검리(篤檢里)에 사는 천도교인 이주붕(李周鵬)이 주도가 되어 최재명(崔在明)·최재청(崔在淸)·박용득(朴龍得) 등과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주붕·최재명 등은 거사 하루 전인 4월 7일 밤에 모여 4월 8일 독검리에서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독검리 구장(區長) 윤선삼(尹先三)으로 하여금 마을에 통문을 보내 주민들을 모으도록 하였다. 이주붕 등은 독검리와 가까운 오동리와 마방리(馬放里)의 천도교인들에게도 시위계획을 알렸는데, 오동리에서 통문을 받고 주민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4월 8일 아침 마을 주민들과 약속 장소에서 독검리 주민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같은 시간 이주붕·최재명·강기준 등은 주민들을 이끌고 독검리를 출발하였다. 이주붕 등이 이끈 군중들이 오동리에 이르자 주민들과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오동리 주민들을 이끌고 최재명·이주붕 등과 함께 반석리(盤石里)·내문리(乃文里)·마방리(馬放里)를 들러 주민들과 합세한 후, 면사무소가 있는 북창리(北倉里)로 향하였다. 그날 오후 700여 명의 군중과 내문면사무소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달아난 내문면장을 대신하여 면서기 최병건(崔炳健)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 안팎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총을 쏘며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때 붙잡혔으며,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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