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구
尹商求1886. 12. 3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관련 사건
- · 이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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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6) 1886년 12월 30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이죽면(二竹面) 장계리(長溪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안성군 이죽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당시 두현리(斗峴里)의 도로 보수공사를 명목으로 한 부역에 동원되었다. 공사장에서 노역을 하던 중, 같은 이죽면 주민 이기훈(李起薰)·이응식(李應植)·최창달(崔昌達)이 서울과 안성 내 다른 지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이죽면에서도 만세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거기에 찬성하여, 다른 인부들과 함께 죽산리(竹山里) 헌병주재소와 이죽면사무소로 가서 앞장서 만세를 외쳤다. 이후 이기훈·이응식과 뜻을 같이하여, 이튿날 최창혁(崔昌赫)·김용규(金容珪) 등의 주도로 궐기한 죽산리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시위에는 죽산리뿐만 아니라 이죽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는데, 2,000명에 달하는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죽산리 일대를 행진하였으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재차 포위하고 유리창과 외벽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 일제 경찰이 이죽면 일대를 검속하여 만세운동 참가자를 체포할 때, 만세시위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독립운동의 뜻에 공감하고 두 차례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치안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과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만세운동이 한민족의 당연한 권리이며 보편적 정의인도의 원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사면에 의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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