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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동

尹三東

1901. 12. 5 ~ 198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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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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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동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9) 1901년 12월 5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수안리(壽安里,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윤참동(尹參東)·윤수동(尹壽東)이 있다. 활동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월 13일 동래면 시장에서 궐기한 학생들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일 부산상업학교 학생 박성해(朴性海)는 평양에서 온 지인에게서 독립선언서를 건네받고, 같은 학교 학생 김태곤(金兌坤)·최익수(崔益守)와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세 사람은 3월 9일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뜻을 같이하고자, 그 학교 4학년생 엄진영(嚴進永)의 집을 방문하여 독립운동의 뜻을 설명한 다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엄진영은 같은 4학년생인 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는데, 이때 이들과 뜻을 같이하여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였다. 이후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동안, 서울에서 수학하다가 귀향한 선배 곽상훈(郭尙勳), 수학 교사 이환(李環)이 참여하여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거행한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3월 11일부터 13일 오전까지 엄진영의 집과 각자의 하숙방 등지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와 고종이 독살되었음을 의미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 격문을 인쇄하고, 태극기와 ‘독립만세’ 깃발을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시장에 모인 학생들은 망미루(望美樓)에 올라선 엄진영의 선창을 시작으로 궐기하였는데, 이때 시위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살포하였다. 학생들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 역시 대열에 참가하여 200여 명에 달하는 군중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과 헌병대는 총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격문과 깃발 등을 준비하였으며, 시장 내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1919년 8월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청년단체에서 소속되어 1925년에는 동래청년회(東萊靑年會) 재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28년 동래청년회가 동래청년동맹(東萊靑年同盟)으로 재편될 때 서무재정부 위원을 역임하였다. 이후 민족유일당운동에 투신하여 신간회(新幹會) 동래지회 회원으로서 지역 내 한국인들의 권익 도모와 계몽 사업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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