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始榮
始榮1882. 1. 10 ~ 1919. 7.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달성친목회
- · 조선국권회복단
- · 대한광복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6년 대구권총사건
- · 1919년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1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봉산동(鳳山洞)에서 성리학자(性理學者) 만당(晩堂) 이관준(李寬俊)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본명은 이중현(李仲賢)이고, 호는 우재(又齋)이다.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몸이 건장하여 무인의 기상이 있었고, 시(詩)·서(書)·화(畵)에도 능하였다. 1908년 이후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국외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중국 상하이(上海)와 남만주 류허현(柳河縣)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9월 5일 설립된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서상일(徐相日)·윤창기(尹昌基)·정운일(鄭雲馹)·김진만(金鎭萬)·서창규(徐昌圭)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4년 중국 만주와 베이징(北京) 등지를 여행하며 국제 정세를 살피는 한편, 국외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독립운동의 방책을 모색한 뒤 귀국하였다. 대구에서 전당업(典當業)을 하면서 태궁상점(太弓商店)을 설립하고 상업 활동을 하던 서상일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들 이응창(李應昌)은 서상일의 사위였고, 대구 부호 서우순(徐祐淳)도 집안의 사돈이었다. 1913년에는 천도교(天道敎) 대구교구(大邱敎區)의 공선원(共宣員)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15년 (음)1월 15일 서상일·윤상태(尹相泰)·정운일·홍주일(洪宙一)·박영모(朴永模)·서병룡(徐丙龍)·윤창기 등 달성친목회의 회원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을 결성하고 교통부장(交通部長)을 맡았다. 같은 해 7월 15일 박상진 등이 풍기(豐基)의 광복단(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자, 조선국권회복단의 정순영(鄭舜永)·홍주일·정운일·최준(崔浚) 등과 함께 합류하였다. 박상진 등과 함께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필요한 군대 양성과 무기 구입에 필요한 군자금 조달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1915년 4월 박상진 등과 함께 최준명(崔俊明)으로 하여금 서창규에게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요청하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같은 해 6월 최병규·정운일 등이 서창규를 만나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11월에도 박상진·김진만·김진우(金鎭瑀)·최병규(崔丙圭) 등과 함께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이장우(李章雨)·서우순 등에게 각각 50,000원, 20,000원, 30,000원의 독립군자금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대구의 부호들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16년 8월 대한광복회의 박상진·정순영·홍주일·정운일·김재열, 대구의 최병규·최준명·김진만·김진우, 그리고 서우순의 아들인 서상준(徐相俊) 등과 함께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마침 김진만은 장인 서우순이 첩의 집에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월 4일 김진만·김진우·최병규·정운일 등과 함께 서우순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에 놀란 서우순의 비명 소리에 집사 우도길이 달려오자 일행은 총을 쏘면서 달아났다. 일명 ‘대구권총사건(大邱拳銃事件)’으로 인하여 1917년 6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김관제(金寬濟)·변상태(卞相泰) 등으로 하여금 경남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평소 따르던 한위건(韓偉健)·김영호(金永浩)·이경식(李京植) 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그 뒤 류허현(柳河縣) 싼위안바오(三源浦)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9년 7월 9일 피로와 식중독이 겹쳐 사망하였다. 평소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칭찬하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鎬)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문무를 겸전한 우재(又齋)가 갔으니, 또 하나 큰 별을 잃었다.”라며 탄식하였다. 또한 성재(省薺) 이시영(李始榮)도 “나라의 큰 별”을 잃었다며 한탄하였다. 대구 앞산공원 낙동강전승기념관에 우재 이시영선생 순국기념탑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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