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文庸

文庸

1891. 9. 8 ~ 1962. 9. 1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文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부여(夫餘)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주비단
  • · 형평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9월 8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岩面) 외리(外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주비단(籌備團)이 조직되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대한 원조와 연락을 담당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비밀결사에 의한 독립운동단체의 조직이 필요하였다. 이에 장응규(張應圭)·여준현(呂駿鉉)·안종운(安鍾雲)·심영택(沈永澤)·조경준(趙景俊)·소진형(蘇鎭亨)·신석환(申奭煥)·이철구(李哲求)·이규승(李奎承) 등과 함께 비밀결사 주비단을 결성하였다. 주비단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군자금 모금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자산가들을 설득하여 이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으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협박장을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6,000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하였고 일부는 주비단의 활동 자금에 충당하고 일부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는 일에 참여하면서 일제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주비단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면서 붙잡혀, 1921년 10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공갈죄와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경성감옥과 원산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4년 6월 15일 만기 출옥으로 풀려났다. 풀려난 후, 1929년 4월경 형평사운동에 참여하였다. 형평사운동은 1923년부터 시작된 백정(白丁)들의 자기해방운동이자 일제식민지 치하에 있어 다른 사회운동단체와의 제휴 아래 민족해방운동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형평사운동에 형평사원으로 참여하여 고기를 판매하던 중 부여군 규암주재소 순사 이진규(李震圭)가 ‘너’라고 부르자 이에 저항하였다. 1930년 10월 부여농민조합(扶餘農民組合)의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조합 설립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