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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영

尹厚榮

186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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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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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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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황주군 황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천주면(天柱面) 외두리(外斗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1919년 당시 56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黃州面) 읍내 남천(南川)장터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을 비롯해서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 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3월 2일 황주면 남천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천도교인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인접 지역인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최창룡(崔昌龍)은 황주면의 천도교구에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전달하였다. 황주 천도교구장 황기타(黃己拕)는 소(小) 교구장 김성준(金聲駿)과 함께 천도교도들이 모이는 일요일이자 남천장터가 열리는 3월 2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평소 독립을 염원하던 황주면(黃州面) 황강리(黃崗里)의 최석길(崔錫吉)·김광섭(金光燮),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趙鎭永), 성남리(城南里)의 김병식(金炳植) 등에게 연락하여, 3월 2일 오후 2시 경 남천장터에서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3월 2일 오후 2시경 황기타는 천도교도들과 남천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나아가 수백 명의 천도교도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윤후영은 장터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황주경찰서 앞을 행진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의 행진을 차단하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김병식과 강형섭(康亨燮)을 연행하였다. 표정일(表正一)을 중심으로 윤후영은 격분한 시위대와 함께 경찰서 내부로 진입해 기물과 건물 유리창 등을 파손하였다. 이후 기독교 예배당에서 시위대의 대오를 정돈하면서 만세를 외치자, 이에 호응한 기독교인들도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황주경찰서는 인접 지역에 지원 병력을 요청하였다. 나아가 소방조(消防組)까지 동원해서 시위대를 진압하고 황주면 일대를 엄중하게 감시하였다. 오후 5시 시위 주도자들과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200여 명의 시위대가 황주면 천도교구실에 모여서 휴식을 취하던 중 일제 군경의 습격을 받았다. 그리고 황기타·최석길·김광섭·조진영·표정일 등 8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요죄, 보안법 위반으로 5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한국병합 이후 조선의 독립을 한결같이 희망하였으며,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에 의해서 독립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3월 1일 조선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기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은 정당하며 세계대세에 직결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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