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東華

東華

1907. 1. 12 ~ 1995. 1. 1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東華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남 강동(江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경성콤그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07년 1월 12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만달면(晩達面) 화천리(貨泉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두산(斗山)이고 이명은 목자동화(木子東華)이다. 평양의 숭덕소학교와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6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법문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서울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교수로 부임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유학 시절부터 독서회에 참여하여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국제정치와 외교, 경제 문제, 사회주의 사상 등을 연구하고 신사회의 건설과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게 되었다. 1940년 4월경 서울 종로구에서 조재옥(趙載鈺)에게 독서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지도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이 독서회는 1939년 이관술(李觀述)·이순금(李順今) 등이 조직한 ‘무명(無名)의 결사’가 1940년 3월부터 확대 발전된 비밀결사 ‘경성콤그룹’ 산하 학생부(學生部)의 하부조직이었다. 경성콤그룹은 노동자·농민·학생의 조직화를 기반으로 결성된 비밀결사로, 일제의 혹독한 사상 탄압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단체였다. 경성콤그룹에서 조재옥이 학생부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1939년 10월경부터 윤명의(尹命儀)·조희영(趙僖英) 등과 함께 비합법 독서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이론적 지도를 의뢰한 것이었다. 1941년 4월 서울 성북정(城北町) 하숙집에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김한성(金漢聲)이 방문하였다. 김한성은 경성콤그룹 가두부(街頭部)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활동할 것을 제안하였다. 김한성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따른 긴박한 국제정세를 이야기하며,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건강상의 이유를 밝히면서 제1선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외곽에서 이론적 연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1941년 9월경부터 경성콤그룹에 대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때 관련자로 지목되어 붙잡혀 오랜 고문과 조사를 당하였다. 1943년 10월 25일 예심이 종결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44년 9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서기국 서기를 지냈으며 1951년에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일하였다. 1952년 경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53년 한국내외문제연구소를 개설하고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국방대학원, 동국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작금(昨今)의 내외 정세와 한반도 통일』(1985)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