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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庚子乭

庚子乭

1900. 8.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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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庚子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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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풍산(豐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풍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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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00년 8월 14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웅이면(熊耳面) 동주리(東周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경자(李庚子)·이용호(李用浩)·이관호(李寬浩)·이용(李湧)·이관오(李官吾)이다. 1926년 8월 중국 창바이현(長白縣)으로 건너가 11월에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한 후 화성의숙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이듬해 졸업하였다. 이후 정의부 모연소대장(募捐小隊長)의 김경근(金京根) 휘하로 들어가 13도구(十三道溝)·15도구(十五道溝) 방면에서 군자금 모집과 통신·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5월부터 8월까지 김경근의 부하 3명과 군자의무금 명목으로 한인 매호 당 5~30원을 모집하였고, 수합된 군자금 6,000원은 김경근의 부하 3명이 가지고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모젤식 권총 2자루와 총알 500여 발을 받아,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박순희(朴順熙)에게 국내 반입을 부탁하였다. 당시 창바이현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순희는 부인 오성녀(吳姓女)와 1928년 12월말 고향인 북청군(北靑郡) 하차서면(下車西面)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기들을 무사히 국내로 옮겼다. 뒤따라 국내로 들어와 삼수군(三水郡) 관흥면(館興面) 개운성리(開雲城里)의 목재소에 노동자로 위장해 취직하였다. 그리고 1929년 1월경 목재소의 서기인 윤재원·윤치원 두 사람에게 ‘이해산(李海山)’이라는 명의로 ‘군자금을 내라’는 문서를 30여 회 보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삼수군 호인면(好仁面)에서 붙잡혔고, 이후 삼수군 내의 독립운동세력에 대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과 검거활동이 이어졌다. 이 일로 박순희·변영수(邊永秀)·변택수(邊澤秀) 등과 재판에 회부되어, 1929년 5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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