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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吉

德吉

미상 ~ 190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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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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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山淸)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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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학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학로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대한제국 군대의 상등병(上等兵)으로 복무하였다. 1907년 일제와 친일 내각 사이에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그 후속 조치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원주 진위대(原州鎭衛隊)가 봉기를 일으킨 것을 필두로 하여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대한제국의 군인이었으므로 군대 해산 이후에 의병부대에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경남 산청의 이학로(李學魯) 의병부대에 참여하기 전까지 어떤 부대에서 활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로 의병들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장교(將校)나 부사관(副士官)이 아닌 병졸(兵卒) 출신이었으나, 상등병은 병졸의 세 계급 중 가장 상위자였고 대한제국 군대 복무 당시 분대를 지휘할 수 있는 군사 훈련을 받았으므로 의병들에게 군사적 지식을 전수할 수 있었다. 1908년에서 1909년 사이 경남 지리산(智異山)과 가야산(伽倻山)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일본인들의 가옥을 소각했던 의병장 이학로의 서신을 받고 의병부대의 연병교관(練兵敎官)으로 활동하기 위해 경남 산청군 백곡동(柏谷洞) 신대(新垈)로 이동하였다. 때마침 1909년 3월 14일 마침 이 지역의 의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작전을 벌이고 있던 일본군 보병 제14연대 매계수비대(梅溪守備隊)에 붙잡혔다. 일본군의 조사를 받은 후 정당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같은 해 3월 21일 일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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