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光翰
光翰미상 ~ 1929. 10. 26
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생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정의부(正義府)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희생되었다. 1924년 11월 24일 성립된 정의부는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와 함께 3부로 불리며 1920년대 중후반 재만(在滿)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하얼빈(哈爾濱) 이남의 만주를 관할 지역으로 해 그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생계를 도모하고 의용군을 편성해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성립 초기에는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된 한인사회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자치활동에 더 치중하였고, 군사적인 무장항일투쟁은 적극적이지 못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1926년 말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이 사령관이 되면서부터는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을 펼치는 노선으로 전환되었다. 군사학교를 설립해 수시로 모집된 한인 청년들을 훈련시켜 정의부 의용군 소속의 독립군으로 편제하였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애국심과 희생만 강요하지 않고, 일정의 봉급을 지불하여 소속원으로서의 자존감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대원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많은 유격대를 구성해 활발하게 국내진입작전을 펼쳤다. 따라서 1926년 후반부터 1927년까지 정의부의 항일무장활동 횟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정의부 의용군의 군사활동이 늘어나 큰 피해를 입은 일제는 근거지가 있는 만주 곳곳에 밀정을 풀어 상황을 파악하고 경찰대 또는 군대를 파견해 공격하였다. 그 결과 1927년 12월 16일 사령관 오동진이 창춘(長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확한 일시는 파악되지 않지만 이처럼 일제가 정의부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과정에서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신의주경찰서로 옮겨져 조사를 받고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수감된 지 2년 만인 1929년 10월 26일 옥중에서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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