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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寬植

寬植

186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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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寬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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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길주(吉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길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한민회
  • · 대한국민회
  • · 의용대
  • · 중흥단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함경북도 길주(吉州) 출신이다. 1921년 일제 보고 문서에 기록된 당시 거주지는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숭례향(崇禮鄕) 치안사(治安社)이다. 1919년에는 훈춘현(琿春縣)의 유력자인 황병길(黃丙吉)과 만세운동에 앞장섰고, 이후 황병길·이광택(李光澤) 등이 주도해 훈춘현에 결성한 독립군단인 한민회(韓民會)에 가담해 군무부(軍務部) 소속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북간도 최대 민족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소속되었고, 1920년 중반에는 간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20년 10월 일본군 대병력이 서·북간도를 침입하자, 자신을 따르는 일부 독립군들을 인솔해 서간도 창바이현(長白縣)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이른바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을 자행하고 철수하자, 의용대(義勇隊)라는 독립군단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북간도에서 함께 한 병력과 창바이현에서 합류한 인원까지 합해 의용대의 규모를 확장한 후, 13·14·15·16·17·18·19도구(道溝) 등에 배치하였다. 이처럼 창바이현의 험준한 지형을 십분 활용해 유격전을 펼치기 쉽게 분산 배치된 의용대 대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 일제 군경을 상대로 항일전을 펼쳤다. 1924년경 지안현(輯安縣)으로 옮겨 중흥단(中興團)의 암살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중흥단은 1920년 1월 한족회(韓族會)의 분신으로 성립한 단체였다. 서간도 최대의 자치단체였던 부민단(扶民團)은 3·1운동 후 한족회로 확대 조직되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한족회가 독립운동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중국 측을 압박하였다. 이에 중국 측이 압박을 가해오자 지휘부는 한족회를 해산하는듯 보이게 하고 중흥단을 택하였다. 이후 중흥단을 내세워 자치활동만 실시한다고 표방하였지만, 한족회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24년 중흥단을 항일무장 군단으로 변경시켜, 퉁화현(通化縣)과 지안현에 대원들을 배치해 의용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압록강을 넘어 위원(渭原)·만포(滿浦) 등으로 진입해 유격전을 펼쳤다. 1924년 중반 서간도를 포함한 남만주(南滿洲)에 근거지를 둔 독립운동단체들은 통합 운동을 위해 1924년 7월 10일 전만통일회주비회(全滿統一會籌備會)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약 4개월 동안의 노력으로 같은 해 11월 24일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고본계(固本契)·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 등 8개 단체를 통합해 정의부(正義府)를 탄생시켰다. 중흥단이 한족회의 표방단체였고, 한족회와 서로군정서는 한 단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이때 자연스럽게 정의부의 구성원이 되었다. 군정부(軍政府)적인 성격을 가진 정의부는 이주 한인의 생계와 삶을 이끌 자치기구와 조국 광복을 위한 무장기구인 의용대를 편성하였다. 정의부는 성립 당시부터 헌장에 하얼빈 이남의 광활한 남만주에 거주하는 한인을 관할하며 조국 광복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는 것을 명시했기에 자치기구 편성은 필연적이었다. 자치기구는 3권분립에 입각한 중앙조직과 관할지역내 각 한인사회에 지방조직을 편성해 조직되었다. 이중 지방조직은 하위 단위부터 십가장(10호), 구(區, 50호), 백가장(100호), 지방(500호), 총관구(總管區, 1,000호) 등으로 편성되었다. 1,000호를 책임지는 총관구가 하위 단위의 지방조직을 관할하며 남만주의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한인의 삶과 생계를 이끌었다. 1925년 중반부터 총관구 가운데 퉁화현 총관에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1927년 중반까지 총관으로 군자금을 모집해 중앙으로 전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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