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京相

京相

1891. 2. 16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京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온성(穩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91년 2월 16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남산면(南山面) 삼봉리(三峯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경사(李京事)이다. 1919년 3월 중국으로 이주하여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춘명사(春明社) 십리평(十里坪)에 거주하다가,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훈육부장 박영희(朴永熙)의 권유로 군정서에 참여하였다. 1920년 3월에는 대한군정서 경신분국(警信分局) 33분국(分局) 3과장(課長)에 임명되었고, 군정서 산하 육군사관학교에 제복과 식량·무기 등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924년 (음)9월 30일 김추곡(金秋谷)·박승빈(朴承斌)·방자천(方子天) 등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옌지현(延吉縣) 지인향(志仁鄕) 풍림동(風林洞)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권총을 소지한 상태로 1925년 간도일본총영사관 경무서(警務署)에 붙잡혀, 8월 14일 함북 회령경찰서에 인계되었다. 1925년 9월 1일 청진지방법원 회령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5년 10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9년 3월 1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