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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壽逸

壽逸

1885. 1. 29 ~ 1966.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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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壽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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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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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제2차 유림단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85년 1월 29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석전동(石田洞)에서 아버지 이진환(李晉煥)과 어머니 박기동(朴琪東)의 3남 1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이명은 이수기(李壽麒)·이숭경(李崇卿)이고, 호는 영헌(逞軒)이다. 1926년 12월 심산(心山) 김창숙 (金昌淑)이 주도한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제1차 유림단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김창숙이 1925년 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회영(李會榮) 등과 함께 내몽고 지역의 토지 30,000만 정보(약 297,522㎢)를 개간하여 군사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1925년 1월 필요한 군자금 200,000원을 국내의 영남지역 유림을 대상으로 모집하기로 하였다. 1925년 4월 김창숙은 당시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주의 송영호(宋永祜), 달성의 이봉로(李鳳魯), 봉화의 김화식(金華植) 등과 구체적인 군자금 확보 계획을 세웠다. 1925년 6월 말 송영호, 7월 하순 김화식, 그리고 8월 중순 김창숙이 차례로 서울로 들어와 거점을 확보하였다. 김창숙은 당시 서울 관훈동(寬勳洞)에 마련된 면우집간소(俛宇集刊所)를 중심으로 정수기(鄭守基)·손후익(孫厚翼) 등의 영남 유림을 만나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우선 친일 부호들에게 강제로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고, 10월 하순 이를 수행할 무장 조직 신건동맹단(新建同盟團)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모금액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고, 활동도 어렵게 되었다. 이에 김창숙이 1925년 12월 말 직접 대구로 내려오자, 김헌식(金憲植)·이영로(李泳魯)·김창백(金昌伯)·홍묵(洪黙)·이동흠(李東欽)·이종흠(李棕欽) 등과 함께 대구 남산동 신형익의 집에서 직접 만나 활동 목표와 지침을 듣고 경상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6년 4월 2일 김화식이 체포되면서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대부분의 관련자가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26일 생명이 위독한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렀다가 왜관경찰서의 일제 순사들에게 폭행 당한 뒤 붙잡혔다. 1926년 12월 1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대구지방법원에서 구류 취소로 1927년 1월 21일 예심 면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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