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觀洙
觀洙1925. 10. 22 ~ 1951. 12.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5년 10월 22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사상면(沙上面) 괘법리(掛法里)에서 태어났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1년 동래중학교 재학 당시 항일학생조직인 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 결성에 참가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허현(許鉉)의 지도를 받아 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其明)·김일규(金一圭)·김진훈(金鎭焄) 등이 독서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정신을 고양하였다. 1941년 동료 학생들과 함께 김일규의 집에 모여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다. 이를 위하여 독서회를 계승하여 조선독립당으로 조직을 강화·개편하였다. 1942년 봄 남기명의 집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갖고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제1조)”라는 강령 등을 명문화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논의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암호를 사용하여 비밀을 유지하였으며, 계속적으로 만나 행동 방략을 협의하였다. 1943년 졸업과 동시에 당시까지 논의한 행동 방략을 실천으로 옮겼다. 이를 위하여 조직의 구성을 국내외 정세조사, 청소년 훈련, 병기탄약 제조, 농민 지도 등으로 나누어 부서를 정한 뒤 각자의 과업 수행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행동반을 맡아 첩보 수집, 간첩 테러 등의 임무를 맡았다. 이와 더불어 자일회(紫一會)·순국당(殉國黨) 등의 다른 항일 비밀결사와도 교류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4년 8월 1일 남기명·김일규·김진훈 등과 함께 양중모의 집에 모여 그 동안의 활동을 보고하고, 정세 분석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민심을 동요시켜 여론을 형성할 목적으로 일본군 탄약고를 폭파하고 군용 열차가 통과할 때 구포(龜浦) 다리를 폭파할 계획 등을 세웠다. 만약 이 거사가 실패할 경우에는 일본군에 입대하여 연합군에 투항한 뒤 중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해 8월 8일 조선독립당 당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5년 옥중에서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8월 1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