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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厚

德厚

1855. 12. 15 ~ 1927.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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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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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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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55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초전면(草田面) 월항리(月恒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字)는 경재(景載), 호는 면와(俛窩)·초은(憔隱)이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과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기도 하다. 김흥락은 영남학파의 주요한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학자·의병·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그 일원이었다. 경학(經學)에도 박학하여 곽종석(郭鐘錫)·이두훈(李斗勳) 등과 이학(理學)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파리장서운동’ 또는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김복한(金福漢)·곽종석·김창숙(金昌淑) 등 영남과 호서의 유림들이 주도하였다. 「파리장서」의 내용은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요체이다. 「파리장서」가 작성되고 여기에 137명의 유림이 연서하였는데, 유림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파리장서」는 문안 작성에 참여한 김창숙이 상하이(上海)까지 운반하였다. 상하이에 도착한 김창숙은 이후 직접 파리에 가지 못하고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보내 파리강화회의 의장에게 제출하도록 하였다. 장서는 한문본과 영문본으로도 인쇄되어 각국 대표와 공사관에게 보냈으며, 국내 향교에는 한문본이 우송되었다. 파리장서운동은 한국민의 독립에 대한 의지 표명임과 동시에 한국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 청원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다. ‘파리장서운동’을 계기로 유림층의 만세운동 참여가 증대되었고, 조직성을 갖게 되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의거는 성주에서 전개된 1919년 4월 2일 성주시장 만세운동에서 연서자인 송회근(宋晦根)·이봉희(李鳳熙) 등이 체포되면서 그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4월 9일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불기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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