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德周
德周1897. 5. 25 ~ 1970. 8.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대구 덕산정 남문외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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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7년 5월 25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대구면(大邱面) 남산정(南山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덕산구 남문외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시위가 대구에 전해진 것은 1919년 3월 8일이었다. 서문시장(西門市場)에서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대구경찰서 경찰과 헌병분대의 탄압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700여 명의 군중은 해산했고, 이 과정에서 157명이 체포되었다. 당시 지역의 청년 유지로서 이러한 무단 검거 소식을 접한 후 서문시장의 만세운동에서 체포되지 않았던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학생 박남준(朴南俊)·김재소(金在炘),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박태현(朴泰鉉) 등을 규합해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주도하였다. 이 외에도 김재병(金在柄)·김치운(金致雲)·김윤덕(金潤德)·서상철(徐相喆) 등도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들이 계획한 재궐기 시위 장소는 덕산정(德山町) 남문외시장(南門外市場, 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염매시장)이었다. 3월 10일 오후 4시 30분을 기하여 남문외시장에 모인 시위 주도자 중에서 김재병 등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재궐기가 시작되었다. 시위에 사용한 깃발에는 ‘한국독립만세’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이때 시장에 모인 군중은 시위에 합류해 만세를 연호하였으며, 함께 무리를 지어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 군중의 규모는 1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장을 순찰 중이었던 일제 경찰은 즉각 만세시위를 탄압하였으며, 헌병분대도 합류하였다. 결국 오후 5시경 시위가 중지되고 군중은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 주도자 65명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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