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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敏

德敏

1867. 9. 13 ~ 19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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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德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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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燕岐)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연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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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67년 9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양화리(陽化里, 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연기군 남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23일 연기군의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1차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된 이래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충남 연기군 남면의 만세시위는 다른 지역보다 하루 늦은 3월 31일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31일 방축리(方丑里)에서는 임헌상(林憲祥)의 주도로 이날 밤 8시경 약 30명이 황우산(黃牛山)에서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보통리(洑通里)에서는 박원칠(朴元七)의 주도로 밤 8시경 약 10명이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양화리·진의리(眞儀里)·월산리(月山里)는 중심 인물들이 협력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진의리의 김봉식(金鳳植), 월산리(月山里)의 임영복(林永福), 양화리의 조의순(趙義淳) 및 임덕문(林德文) 등에게 집을 회의 장소로 제공하며 함께 3월 31일의 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협의하였다. 이들과 거사일 밤 주민들과 함께 아월산(雅月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결정하였다. 회의를 마친 후, 임덕문·김봉식·임영복 등과 곧바로 양화리의 임덕화(林德化)를 추동하여 마을 주민 100여 명과 계획한대로 아월산으로 올라가 어둠이 깔리자 횃불을 밝히고, 한동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지휘하여 진의리로 이동해서 임영철(林營喆)을 추동하여 진의리 마을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다시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지휘하여 송담리(松潭里)로 이동하였다. 송담리에서는 이미 주민들이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이들과 합류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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