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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종

根

186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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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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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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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장단군 진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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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진남면(津南面) 도라산리(都羅山里, 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3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경기도 장단군의 만세시위는 3월 23일 진남면에서 110여 명의 시위대에 의해 평화적으로 전개되었다. 진남면의 만세시위는 3월 26일에도 이어졌는데 출신 지역인 도라산리에 인접한 진남면 동장리(東場里, 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출신인 이창영(李昶永)·강규수(姜奎秀)·한기동(韓基東)·정순만(鄭順萬)·백태산(白泰山)·조진행(趙秦行)·이성구(李聲九)·양재영(梁在瑛)·정종락(鄭鍾樂) 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했을 때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월 26일 밤 9시 10분 진남면 동장리의 사립 성화학교(聖化學校)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그 날 만세시위는 이창영·강규수·한기동·정순만·백태산·조진행·이성구·양재영·정종락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1일 서울 등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의 취지에 동감해서 진남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창영·강규수·한기동·정순만은 시위대 선두에서 성화학교 학생 약 50여 명과 주민 약 110여 명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창영과 강규수는 큰소리로 면장을 죽이고, 면사무소를 부수자고 외쳤으며, 특히 이창영은 소지한 곤봉으로 면사무소 문을 쳐서 유리창을 약간 부쉈다. 이어서 이창영·강규수·한기동·정순만은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유리창과 유리문을 부수었다. 백태산·조진행·이성구·양재영도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를 향해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진남면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3월 27일에도 지속되었다. 490여 명의 시위대가 진남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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