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極模
極模1898. 10. 18 ~ 1942. 1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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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10월 1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일직면(一直面) 송리동(松里洞, 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서지동(西枝洞, 현 서지리)으로 이주해 살았다.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1년에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활동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이 경북 안동군 예안면(禮安面)에도 전파되었다. 예안면 만세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 면서기 이광호(李洸鎬)·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와 잠업(蠶業) 순회교사 이시교(李時敎) 등이 뜻을 모아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3월 17일을 만세운동 거사일로 잡았다. 안동군 유림들과 기독교도들도 같은 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다. 3월 17일 만세운동이 있던 날 오후 장터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 예안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를 듣게 되었다. 20~30명의 군중이 일본이 세운 기념비를 쓰러뜨리고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장터에도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30명으로 이루어진 시위대가 세 곳에서 갑자기 쏟아지듯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터가 한순간에 만세운동의 현장으로 바뀌자 망설임 없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시위대와 함께 장터를 누비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만세운동의 열기가 높아지자 일제 경찰은 수비대를 파견하여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오히려 수비대의 저지선을 뚫고 경찰관주재소까지 나아갔다. 이때 이동봉(李東鳳)이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뒤를 따랐다. 당황한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무력으로 군중을 위협하였고 주도자 등 15명을 붙잡았다. 주도자가 체포되자 부득이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자를 잃은 군중은 일시적으로 흩어졌지만 장터를 떠나지 않고 인근을 배회하는 듯하더니 오후 6시쯤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시 모인 시위대와 함께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이며 주재소로 향하였다. 1,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포위하고 구속자 탈환을 위하여 주재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의 폭력에 투석전으로 대항하며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은 더 많은 일본군 수비대를 급파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조수인(趙修仁)·이맹호(李孟鎬) 등이 부상을 입었다. 수비대가 시위대를 향하여 공포탄을 발포하면서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수비대는 산발적으로 흩어지고 있는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검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던 25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러한 활동으로 같은 해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옥고를 겪고 난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1921년 흠치교(吽哆敎, 일명 증산교[甑山敎])에 가입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였다. 흠치교는 1901년 증산 강일순(姜一淳)이 전라북도 정읍(井邑)에서 세운 민족종교였다. 신도들은 겉으로는 포교 활동을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항일정신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이에 스스로 치성비(致誠費)을 내고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치성비 명목으로 독립자금을 모은 것이 발각되어 다시 붙잡혔다. 1921년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재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같은 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동일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으면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12월 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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