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桂煥
桂煥1898. 12. 19 ~ 1920. 2.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1919년 성주군 가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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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98년 12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面) 가천면(伽泉面) 동원동(東元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가천면 동원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동원동 이상해(李相海)의 집에서 김명준(金命俊)·정길수(鄭吉洙)와 함께 이상해로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지방처럼 주민들을 조직하여 조만간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 이상해는 필묵을 팔기 위해 찾아온 행상인 심성백(沈聖伯)으로부터 이미 이웃 거창군(居昌郡)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이상해의 권유에 동조하여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로 하고 3월 27일을 거사일로 정하였으며, 마을 주민들에게 거사 계획을 전파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하였다. 3월 27일 저녁 7시경 김명준의 권유에 응하여 같은 마을 이태희(李泰熙)의 집 앞으로 갔다. 그곳에 모인 주도자들과 거사 소식을 듣고 모인 사람들과 함께 김명준의 만세시위 주창에 동의해 동참하였다. 그리고 현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의 필요성과 대의를 설명하며 거사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며 주도하였다. 이후 인근에 있던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창천주재소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며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상해·정길수·권작불(權作弗)·김숙이(金淑伊)·최춘이(崔春伊)·정계술(鄭桂述)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2월 21일 풀려났지만,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당한 심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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