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季埈
季埈1869. 12. 28 ~ 1929. 4.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9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월항면(月恒面) 안포리(安浦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산(京山)이며, 부친은 이병상(李秉相)이다. 자는 덕소(德邵)이고, 호는 암관(岩觀)이다. 일산(一山) 이탁소(李鐸韶)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에게 배웠고, 파리장서와 성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한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유림이 전개한 파리장서 운동의 서명자로 참여하였다.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1919년 3월 유림대표 137명이 연서하여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를 프랑스의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고자 한 독립운동이다. 호서지역에서는 김복한(金福漢)이 중심이 되어 김덕진(金德鎭)·안병찬(安炳瓚) 등이 참여하였고, 영남 지역에서는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이 주도하였다. 이때 장석영·이계원(李啓源) 등과 함께 서명자로 연서하였다. 유림은 일제의 불법적인 한국 주권 찬탈 과정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 등의 내용을 담은 파리장서를 통해 식민통치를 거부하는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이고, 한국 독립을 국제적 문제로 상정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김창숙이 완성된 파리장서를 가지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고,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발송해 제출하도록 하였다. 비록 파리강회회의 의장에게 전달되지는 못하였지만, 한문본 3,000장과 영문본 2,000장을 인쇄해 각국 대표와 공사관으로 발송하였다. 또한 국내 각 향교에도 한문본을 우송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서명자였던 송회근(宋晦根)이 성주 만세시위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힌 이후 조사를 받으면서 파리장서운동이 발각되었다. 이후 파리장서에 참여한 서명자와 관련자들이 일제 경찰에게 차례로 검거될 때, 성주경찰서에 붙잡혀 대구경찰서를 거쳐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3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