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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啓性

啓性

1879. 3. 14 ~ 196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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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啓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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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9년 3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금마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1919년 서울의 만세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정된 공연 중에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거사일인 4월 1일 민영갑 등은 연극공연을 관람하다가, 오후 8시경 일제히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연극을 관람하고 있던 중 갑자기 터져 나온 독립만세 구호에 많은 관객들이 놀랐으나, 한국의 독립이라는 취지에 공감한 20~3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민영갑 등의 선창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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