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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啓彬

啓彬

1878. 11. 9 ~ 1928.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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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啓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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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옹진(瓮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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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해주군 해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8년 11월 9일 황해도 옹진군(瓮津郡) 부민면(富民面) 강령리(康翎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0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해주면(海州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전부터 황해도 옹진군에는 개신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와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2월 28일 오전 8시경 협성보통학교(協成普通學校) 교사인 해주 출신 김명신(金明信)은 서울 종로(鐘路)에 위치한 중앙기독교회당에서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朴熙道)를 만났다. 김명신은 박희도에게 해주와 옹진의 개신교 목사들에게 독립선언서 전달을 의뢰받고, 그날 저녁 해주군의 황학소(黃鶴巢)에게 선언서 300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3월 1일에는 옹진군 마산면(馬山面) 온천리(溫泉里)의 마산교회를 방문하여, 부재중이었던 목사 곽정숭(郭貞崧)을 대신해서 전도사(傳道師) 이경호(李京鎬)에게 선언서 150장을 전달하였다. 곽정숭과 이경호는 마산교회에서 옹진군 일대 개신교 인사들과 회합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한 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후 3월 2~3일 옹진군 흥미면(興嵋面) 식여리(食餘里) 율목동(栗木洞) 예배당과 마산면(馬山面) 온정시장(溫井市場)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그러자 해주군 천도교구는 해주면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옹진군 천도교인들의 동참도 요청하였다. 3월 10일 해주면 읍내에서 개신교인과 천도교인이 함께 추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날 오전 이면식(李冕植)·안경구(安敬九) 등과 함께 옹진군 부민면의 천도교인과 인근 면의 주민들을 인솔해 해주면 읍내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해주군 해주면 읍내에서 최부은(崔簿殷)·최승항(崔承恒)·이성룡(李成龍) 등과 함께 연계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낮 12시 30분경 부민면의 천도교인과 해주군 석동면(席洞面)의 천도교인 100여 명이 독립기(獨立旗)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해주 읍내로 진입하였다. 그러자 3월 9일 해주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했다가 무산된 개신교 계통의 청년과 학생을 비롯해서 읍내에서 수백명이 만세시위에 합세하였다. 해주경찰서·해주헌병대·황해도경무부 소속 일제 군경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이때 80여 명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였기에 민족자결주의에 의해서 조선 독립의 열화와 같은 절규를 좌시할 수 없기에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면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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