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敬伯
敬伯미상 ~ 1919. 4. 6
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관련 사건
- · 수원군 장안면
- · 우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2)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생지역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당시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현 화성시) 장안면(長安面) 사곡리(沙谷里)에 거주하며,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雨汀面, 현 화성시 우정읍)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수원의 일본인들은 3월 16일 소방대를 동원해 수원 천도교구실을 공격하고, 밤이 되자 삼일여학교(三一女學校, 현 매향중학교·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를 습격하였다. 이는 만세시위를 주도할 인사들을 미리 제압하여 수원 일대에서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인들의 폭력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수원 군민들은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일제의 무단 통치에 저항하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1일 장안면 수촌리(水村里) 구장이자 천도교 남양교구(南陽敎區) 순회전도사인 백낙열(白樂烈), 팔탄면(八灘面, 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古洲里)의 김성열(金聖烈), 향남면(鄕南面, 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堤岩里)의 천도교 전도사 안종후(安鍾厚) 등은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백낙열은 수원으로 돌아온 직후 천도교 인사들과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고, 고주리의 천도교 지도자 김흥열(金興烈)을 찾아가서 만세시위 준비를 담당할 인물의 파견을 부탁하였다. 3월 16일 김흥열은 제암리 전도사인 안종린(安鍾璘)과 안종후를 천도교 수원교구실로 파견하였다.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爀)·차병한(車炳漢)·장제덕(張濟悳)·장소진(張韶鎭)·이영쇠(李永釗) 등은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장안면은 차병혁과 김영세(金永世)가 담당하였으며, 우정면은 차희식이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사전에 제작하였다. 4월 2일 밤 9시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에서는 거의 모든 산에서 일제히 불을 피우며 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전 9시경 주도자들이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본격적으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장안면 석포리(石浦里)를 출발해 조암(朝岩)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시위대 앞에 선 차희식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삼창을 하였다. 오전 10시 30분경 300여 명의 시위대가 장안면사무소를 포위하고, 총독의 유고(兪告)만을 설명하는 면장 김현묵(金賢黙)을 질타하였다. 그리고 면사무소의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면서 만세시위에 면장이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수락한 김현묵을 앞세우고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쌍봉산(雙峯山)을 지나 우정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차병혁을 선두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한 1,000여 명의 시위대는 서류를 불태우고 면사무소를 포위한 채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한각리(閑角里)의 작은 산으로 행진하였고 이어서 화수리(花樹里) 로 이동해 화수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다시 2,5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주재소를 포위하자, 최장섭(崔長燮)·송지문(宋志文)·박재남(朴在男)·김백민(金伯民)·김석봉(金石峰) 등이 시위대를 인솔해 주재소로 돌진하였다. 일제 경찰은 공포탄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자 하였으나, 시위대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실탄 사격을 감행하였다. 일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3명이 중경상을 입자, 분노한 시위대는 일제 군경과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결국 시위대는 주재소로 진입해서 기물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도망친 한국인 순사보 이용상(李龍相)을 잡아서 구타하였다. 이때 일제 순사 가와바다(川端豊太郎)가 주재소를 공격하는 시위대를 향해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발포하며 도주하였다. 도망가던 가와바다는 인근 야산에서 추격해 온 시위대에게 붙잡혀 결국 참살당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와바다가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그 해 4월 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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