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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景徠

景徠

1870. 6. 2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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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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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곡산(谷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곡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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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1919년 곡산군 곡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70년 6월 28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운중면(雲中面) 완정리(完井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4일 곡산면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저녁 이경섭(李景燮)은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의 지시를 받고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석교리(石橋里)의 수안천도교구장 안봉하(安鳳河)를 방문하였다. 이경섭은 안봉하에게 독립선언서 70부를 전달하면서 수안군 일대의 천도교인을 규합해서 만세운동을 주도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3일 이경섭은 곡산군으로 이동해서 이재경(李載景)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면서 곡산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재경은 독립선언서의 취지에 호응해서 곡산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3일 수안군 수안면에 거주하는 홍석정(洪錫禎)도 곡산면 송항리(松項里)의 천도교구 전도실을 방문해서 김희룡(金希龍)에게 독립선언서를 건네주면서 곡산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김희룡은 이문일(李文鎰)·조영섭(曺永涉)·문창환(文昌煥)·김창현(金昌玄) 등을 규합해서 3월 4일 곡산면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화촌면(花村面) 광천리(廣川里)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김두환(金斗煥)은 같은 면 도이리(桃李里)의 천도교 교리강습소 강사 김창렬(金昌烈)을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배포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화촌면 운암리(雲岩里)로 간 김창렬은 이달하(李達河)를 비롯한 주민들을 규합해서 3월 4일 만세시위 참여를 추진하였다. 그 밖에 곡산군 내에서는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의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3월 4일 오전 곡산면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재경·이문일·이경섭·김인갑(金寅甲)·강덕근(康德根)·조병하(趙秉夏) 등은 ‘조선독립’이라고 쓰여진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만세시위에 호응한 주민들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해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재경과 김인갑 등을 체포하였다. 아울러 일제 헌병은 만세시위에 참여하려던 청계면(淸溪面) 문양리(文陽里)와 금성리(錦城里)의 천도교인들을 제지하였다. 이후 곡산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瑞興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3월 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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