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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康來

康來

1869. 11. 16 ~ 193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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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康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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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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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건북유한공사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869년 11월 16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하남면(下南面)에서 태어났다. 1910년 국권 피탈 시 서울 종로구 도렴동(都染洞)에 거주하였다. 1914년 황해도의 자산가 남정호(南廷鎬)로부터 토지매각 등을 위임받고, 이를 이용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목표로 김정빈(金正彬)·이승호(李承鎬)·남정호·유연건(柳淵建)·신언학(申彦學)·이승직(李承稷)과 1915년 6월경 자택과 종로구 익선동(益善洞) 소재 차진원(車鎭源)의 집에서 수차례 비밀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청(淸)의 마젠중(馬建忠)이 대한제국 공사(公使)로 있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알선으로 고종에게 은 26만 냥을 빌렸다는 내용을 듣고, 이를 이용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먼저 의친왕(義親王)이강(李堈)을 통해 마젠중에게 발행했다는 차용증을 고종에게 양도받아, 마젠중으로부터 대여금을 상환받아 독립운동기지 건설 자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동지를 규합하고 간도로 이주해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라는 비밀단체를 세워 ‘새 국가 건설의 기초’를 세우고, 위안스카이를 통해 국권 회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종과 이강에게 보내는 상서문(上書文)을 작성하여 김석윤(金錫胤)을 통해 이강에게 제출하였으나 바로 반려되었다. 그러자 1915년 (음)7월 남대문 부근의 인쇄사에 의뢰하여 고종과 이강의 도장을 위조하고 서류를 꾸며, 각 지역의 조직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1915년 8~9월 서울·경남·황해 등지에서 이러한 취지를 적은 문서를 배포하여 동지의 규합을 시도하고 국권회복운동 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6년 4월 11일 동료 6명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6년 10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사문서위조행사, 사기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917년 2월 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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