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현
尹泰賢188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백산무사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1919년 순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자산면(慈山面) 청룡리(靑龍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7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순천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1심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유죄를 받고 항소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919년 8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조선 민족이 세계적 평화주의 아래에 민족자결을 실행함은 정당한 행위이고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풀려난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21년 6월 펑텐성(奉天省) 린장현(臨江縣)·푸쑹현(撫松縣)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에 가입하였다.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추평리(秋坪里)의 호혈산(虎穴山)에 백산무사단 지단을 설립하였다. 또한 순천군 자산면 소재 천도교 교구실을 빌려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문서 600매를 등사기로 인쇄·배포하였다. 또 “삼천리 강토를 왜에게 잃어버리고 우리의 자유정권까지 빼앗긴 우리들은 그와 같은 슬픈 광경을 오래 보고 있겠는가. 우리들은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기약하노니 여러 재산가들은 이때를 당하여 군자금을 제공하라”라는 격문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여 단장 이춘삼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9월 18일 김문선(金文善)·황영화(黃榮華)와 순천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같은 해 11월 2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22년 1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24년 5월 2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