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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來修

修

1860. 8. 22 ~ 193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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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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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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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민종식 의병부대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0년 8월 22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부적면(夫赤面) 충곡리(忠谷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백(源伯), 호는 양은(陽隱)이다. 아버지는 경술국치(庚戌國恥) 때 사망한 이학순(李學純)이다. 동생 이내준(李來俊) 역시 함께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1906년 홍주(洪州)의 민종식(閔宗植)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국권회복에 힘을 쏟았다. 이후 일제의 한국 지배에 분노를 금치 못하여 여러 차례 민적(民籍)을 불태워 1913년 연산경찰서와 대전경찰서에서 몇 개월 씩 갇히기도 하였다. 1916년 7월 연산(連山) 한양리(漢陽里)의 본가에서 홍주 의병부대 출신인 이용규(李容珪)·이만직(李晩稙)·윤병일(尹炳日)·이내준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먼저 각자 가산을 팔아 비용을 마련하였다. 또한 곳곳의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밀정의 고발로 1917년 4월 논산의 한 여관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전라남도 기자도(箕子島)로 1년간 유배를 당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4월 23일에 이용규 등과 함께 서울에서 개최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國民大會)에 13도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국민대회에서는 임시정부 조직의 건과 일제의 군대 철퇴 요구, 파리강화회의에 출석한 인원 선정, 일본 관청에 납세 거부 등의 사안이 결의되었다. 이후 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 등의 유림대표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에 137인의 유림대표 중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서울에서 전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며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을 결성하였다. 이때 유림단(儒林團) 대표로 추대되었다. 조선민족대동단(이하 대동단)은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하여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종교·교육·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지역구역의 11개 단(團)을 구성하여 각층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은 각 지역에 지부를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였으며 『대동신보(大同新報)』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33인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때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11월 말 대동단의 활동이 드러나 일제의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포위망을 피해 1921년 5월경 논산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그곳에서 송종빈(宋鍾斌)의 집을 근거지로 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2천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의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후 조선독립단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23년 8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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