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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康祚

康祚

1890. 12. 21 ~ 195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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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康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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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1919년 밀양군 단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90년 12월 21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현 밀양시) 단장면(丹場面) 미촌리(美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표충사(表忠寺) 승려들의 주도로 단장면 태룡리(台龍里)시장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단장면의 만세시위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호국사찰인 표충사 승려들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20일 표충사에 양산 통도사(通度寺) 승려 50명이 찾아와, 승려 이장옥(李章玉)·이찰수(李刹修)·오학성(吳學成)·김성흡(金性洽) 등과 비밀회합을 갖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임진왜란 때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춘향일(春享日)이자 태룡리시장의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였다. 4월 4일 아침부터 태룡리시장에는 장꾼들이 모여 들었고, 승려들도 일반인 옷으로 갈아입고 독립선언서를 숨긴 채 합류하였다. 이들은 정오가 되자, 장터 한복판에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세웠다. 곧이어 나팔 소리가 울리자 주도 인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였고,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였다. 5,000여 명으로 증가한 시위대의 함성이 장터에 크게 울렸다. 시위대는 태룡동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돌을 던져 유리창과 지붕 등을 파괴하고, 일제 헌병 하사를 때려 부상을 입혔다. 하지만 밀양헌병분견대에서 급파된 헌병들의 발포로 오후 1시 30분경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도 인물 364명이 체포되고, 71명이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때 붙잡혀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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