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甲金

甲金

1895. 10. 27 ~ 1937. 4.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甲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5년 10월 27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갑쇠(李甲釗)이다. 1919년 4월 6일 청양군 목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6일 청양군 목면 만세시위는 전날 전개된 4월 5일 청양군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에서 펼쳐진 만세시위에서 권흥규(權興圭)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이 깊다.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은 정산면 서정리(西亭里)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 오후 3시 경부터 시장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만세시위는 곧바로 출동한 일제 헌병의 무력 탄압에 의해 해산되었고, 시위를 주도한 홍범섭 등 30여 명이 그 자리에서 붙잡혀 정산헌병주재소로 연행되었다. 당시 시장에서 일제 헌병의 폭력적인 탄압을 목격하고 분노한 주민들은 오히려 더욱 대규모의 시위대열을 형성하여 주재소로 몰려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가장 격렬하게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부터 권흥규의 가족·친인척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주재소로부터 시신을 인수하여 운구를 시작하였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 등이 선도하는 운구행렬은 목면 안심리(安心里)를 향해 이동하였다. 이 행렬이 화양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노제를 지내고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이후 지나가는 마을마다 주민들이 통곡하며 동참하여 따르는 사람들이 1,000여 명을 넘었다. 운구행렬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 태극기가 배포되면서 ‘대한독립만세’의 구호가 시작되었다. 이에 적극 호응하여 운구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며, 고인의 자택을 향해 행진하였다. 이때부터 운구행렬과 만세시위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일제는 다급하게 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방면으로 급파하였다. 공주에서 파견된 일제 헌병대는 안심리로 들어가는 길목의 언덕에서 운구행렬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을 비롯하여 명정을 쓴 권영진(權寧鎭) 등 여러 사람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후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고, 조사과정에서 운구와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