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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송

殷熙松

1894. 11. 11 ~ 195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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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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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扶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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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정읍군 고부면
  • · 소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11월 11일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장등리(長登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정읍군(井邑郡) 고부면(高阜面)과 인근 소성면(所聲面)에 독립운동에 대한 취지문(趣旨文)을 작성해 전달하는 활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본래 일제 경찰 순사보로 재직하다가, 3·1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병(身病)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3월 19일 서울 안국동(安國洞) 김강희(金康姬)의 하숙집에서 ‘조국혼(祖國魂)’이라는 익명(匿名)으로 “4천년 역사를 가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분발하자”는 취지의 문서 두통을 작성하여 독립운동에 대한 취지문(趣旨文)을 써서 이를 정읍군 고부면과 소성면의 면사무소에 각각 우편(郵便)으로 송부하였다. 이후 며칠 뒤인 3월 24일 직접 고부면으로 내려가 당시 면서기로 재직하고 있던 은희동(殷熙桐)과 은희국(殷熙國)을 만나 시국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3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부안·정읍·김제(金堤) 지역에서 농민운동(農民運動)에 참여하였다. 1931년 1월에 전조선농민도합 제1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조직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고, 조선농민신문사(朝鮮農民新聞社) 김제지국장(金堤支局長)으로 정미공(精米工) 동맹파업(同盟罷業)을 이끌다가, 1931년 10월 21일 『동아일보』 김제지국장 조순식(趙淳植)·노조간부 김토상(金土相)과 함께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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