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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숙

尹亨淑

1900. 9. 13 ~ 195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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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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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천(麗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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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4)

관련 사건

  • · 1919년 광주군 광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4) 1900년 9월 13일 전라남도 여천군(麗川郡) 화양면(華陽面) 창무리(倉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윤혈녀(尹血女)이다. 1919년에는 전남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설립된 광주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에 다니며, 3월 10일 광주군 광주면(光州面) 읍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은 평소 학생들에게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수업을 하였는데, 김범수(金範洙)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준비할 때 수피아여학교의 학생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 민족에 대한 연설을 듣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3월 10일 오후 2시 30분 무렵 박애순·진신애(陳信愛)를 비롯하여, 같은 학교 학생인 박우말례(朴又末禮)·홍순남(洪順南)·최경애(崔敬愛)·양순희(梁順喜) 등 2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가 열릴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장터로 향하였다. 이곳에서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꺼내 흔들고 사람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읍내 일대를 행진하였다. 그리고 서문통(西門通)과 본정통(本町通)을 거쳐 오후 5시경 우체국 앞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일제 기마헌병대를 비롯하여 소방대와 심지어 퇴역한 재향군인회 소속 일본인까지 동원되어, 총칼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때 일제 군인이 휘두른 칼에 오른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까지 실명되었다고 전해진다. 풀려난 이후에는 전북 고창(高敞)과 전남 여수(麗水) 일대에서 기독교 교회의 부녀야학(婦女夜學)과 유치원에서 교사 등으로 재직하였고, 이후에도 교육활동에 헌신하였다. 광복 이후 기독교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950년 9월 28일 여수 일대를 점령한 북한군에게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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