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이
尹學伊1886. 8. 2 ~ 1945. 6.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병영청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86년 8월 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서리(西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부터 5일까지 전개된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兵營里)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하상면 병영리는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이미 비밀결사인 병영청년회(兵營靑年會)를 조직하고, 주민 계몽을 통하여 상무정신과 배일의식을 고취하고 있었다. 하상면에서의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유학하던 한명조(韓命祚)·이영호(李永浩)가 3월 3일 귀향하여 만세운동의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병영청년회 회원인 이현우(李鉉禹)·이종욱(李鍾旭)·이문조(李文祚) 등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만세시위 거행일을 4월 4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일심동체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결사보국(決死報國)’이란 혈서를 썼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4일 아침, 청년회 회원들이 축구 경기로 위장하고 서리에 위치한 사립 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 현 병영초등학교)로 모여 들었다. 양석룡(楊錫龍)이 축구공을 높이 차 올리는 것을 신호로 ‘대한국 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올리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지로 나갔다. 시위대는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출동한 하상경찰관주재소 경찰에게 주도자 14명이 체포되면서 시위대도 해산하였다. 하지만 붙잡히지 않은 이문조를 비롯한 다른 주도자들이 피신하여 다음 날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5일 이른 아침, 문성초(文星超)와 함께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전날의 시위대를 다시 규합하여 일신학교 부근으로 집결시켰다. 만세시위 소식이 알려지면서 병영성 밖에 대기하던 주민 수천 명이 합류하였다. 만세시위가 격화되면서, 주도자 9명이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이에 시위대는 검거된 주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결국 일제 경찰의 총격으로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시위대 다수가 중경상을 입었으며 40여 명이 붙잡혔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이후 징역형을 받고 풀려난 이들과 함께 ‘기미계(己未契)’를 조직해, 매년 4월 6일 만세시위에서 희생된 동지들을 추모하였다. 광복 이후 기미계는 ‘3·1봉제회’로 명칭을 변경해 명맥을 이어 나갔고, 1955년 병마절도사영의 영모각을 수리해 사당인 ‘삼일사’로 개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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