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
尹泰泳1850. 1. 19 ~ 1919. 4.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천안군 갈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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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50년 1월 19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동면(東面) 송연리(松蓮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태영(尹泰永·尹泰英)이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葛田面) 아우내장터[병천시장(竝川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서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는 일제 군경의 발포로 다수의 사망자와 수 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1919년 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위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만세시위는 병천 지역의 유관순(柳寬順)·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 등과 수신면(修身面)의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 등이 주도하였다. 유관순은 사촌언니 유예도(柳禮道)와 1919년 3월 13일 서울에서 귀향하였다. 3월 16일 부친 유중권(柳重權)과 숙부 유중무(柳重武),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이백하(李伯夏) 등 지역의 인사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이들의 찬성을 받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날 모임에서 아우내장터의 장날인 4월 1일을 만세시위 거사일로 결정하고, 인근 지역까지 연락망을 조직하였다. 동시에 매일 밤 예배당에서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수신면(修身面)에서는 조금 늦은 3월 29일 경 홍일선·김교선·이순구(李旬求)·박영학(朴永學)·한동규(韓東圭)·이백하 등을 중심으로 장날인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렇게 각각 준비되고 있던 2개의 만세시위는 3월 말 연락책으로 활동하던 김상훈(金相勳)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3월 31일 밤 매봉산을 중심으로 천안 길목, 수신면 산마루, 충북 진천(鎭川)의 고갯마루에 봉화가 올랐다. 이것은 다음날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신호였다. 병천 지역의 만세운동 연락망과 3월 31일 밤의 봉화를 확인하고, 4월 1일 아침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장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호소하며 태극기를 배포하고 있던 조병호(趙炳鎬)·조만형(趙萬衡)·박봉래(朴鳳來) 등으로부터 태극기를 받아 옷 속에 숨기고 장터로 들어갔다. 오후 1시 경 조인원이 장터의 한가운데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유중권·유중무·조병호 등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을 신호로 장터에 나와 있던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품속에 감추고 있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조인원·유중권·김교선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위대열을 형성하여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날의 만세시위를 경계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병천헌병주재소의 고야마(小山) 소장 이하 5명의 헌병들이 곧바로 출동하여 3,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를 향해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에 불응한 시위대가 더욱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위대의 위세에 눌려 당황한 일제 헌병이 발포하였고, 김상헌(金相憲)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철수하는 일제 헌병들을 쫓아가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일제 헌병의 발포에 대해 격렬하게 책임 추궁을 하였다. 조인원은 평화 시위임을 강조하며 분노한 군중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제 헌병이 다시 발포하여 유관순이 부상당하고, 유중권이 사망하였다. 또 다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김상철(金相喆) 등이 이끄는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쳐들어가 유치장 벽을 부수고 구금자를 석방하였다. 일제 헌병의 발포로 흩어졌던 사람들은 분노를 안고 다시금 주재소로 모이기 시작하였고, 선두에 선 젊은 사람들은 주재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시위대의 공격으로 주재소의 건물 등이 다수 파손되었고, 천안과 병천 사이의 전화선이 절단되었으며 전신주 1개가 쓰러졌다. 오후 4시 경 천안에서 고우(甲) 대위 이하 철도엄호대 6명이 아우내장터에 지원병력으로 도착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헌병대와 합세하여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환갑이 지난 69세의 노구를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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