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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尹泰璟

1877. 3. 25 ~ 193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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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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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7년 3월 2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등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금마면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에 거주하는 민영갑(閔泳甲)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를 인지하고, 이에 대해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였다. 이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해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공연이 예정된 4월 1일을 만세시위의 거사일로 정하였다. 4월 1일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자, 이들은 계획에 따라 연극 관객으로 입장하였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 시작 이후 기회를 살피다가, 오후 8시 경 일제히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의 호소에 공감한 3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참하였다.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도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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